‘두바이 주재원 아내’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리 가족이 왜 두바이에 왔는지,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짧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그 말 안에는 남편의 직함은 있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없다. 두바이에 오기 전까지 나를 설명하던 말은 따로 있었다. 나는 18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한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한곳에서 쌓은 경험과 관계,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은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일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 수단이 아니었다. 내가 잘하는 일이 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이어온 내 일상이었다.
두바이 주재원 아내가 되며 내려놓은 18년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두바이에 오게 되면서 육아휴직을 썼을 때만 해도 잠시 멈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해외에서 아이를 돌보며 한국의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가족을 위해 나도 동의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사실만으로 마음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희생이라고 부르기에는 내가 선택한 일이었고, 온전한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18년 동안 애써온 시간과 함께 웃고 버텼던 동료들, 그곳에서 내가 해낸 일들이 떠올랐다. 회사를 그만두면 출근만 하지 않게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나고 보니 명함과 소속뿐 아니라 나를 설명하던 말까지 함께 사라진 기분이었다.
가족을 위한 선택에도 상실감은 남았다
그렇다고 두바이에 온 것을 후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에게 한국과 두바이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두바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와서 혼자 지냈던 3개월이 외딴섬에 있는 것처럼 외로웠다고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해가는 모습과 남편이 가족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가족에게 좋은 선택이 나에게도 모든 순간 좋은 선택일 수는 없었다. 함께 지낼 수 있어 다행이면서도 내 일을 잃어서 슬펐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감사하면서도 이대로 내가 도태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나는 이 두 마음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하는 줄 알았다. 가족을 위해 왔으니 불평하면 안 된다고, 감사할 일이 많으니 내 상실감 정도는 조용히 삼켜야 한다고 여겼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작아지는 나
그렇게 마음을 눌러두고 두바이 주재원 아내로서의 일상을 꾸려갔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익숙한 한식 재료를 찾아 장을 보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분명 많은 일을 했는데도 저녁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작은 결과에도 이름이 붙었고 내가 어디까지 해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집에서 한 일은 다음 날이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내 몫의 성취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영어가 마음처럼 나오지 않을 때는 그런 기분이 더 커졌다. 한국에서는 혼자 처리했을 일도 이곳에서는 남편에게 기대야 했고, 학교 상담이나 불편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면 답답함이 밀려왔다. 외국인 앞에서 주저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생각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내가 가진 능력까지 의심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나는 낯선 환경에서 당장 해내지 못하는 일들로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영어가 부족한 것과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은 다른 문제인데도 그 둘을 자꾸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말이 막힌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판단력과 경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경력단절’이라는 말 앞에서도 비슷했다. 경력이 멈췄다는 뜻인데, 내게는 그동안의 경력까지 끊어져 사라졌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졌던 경험은 퇴사 후에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회사를 나왔다고 해서 18년 전의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경험을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 아직 알지 못했다.
글을 쓰며 다시 나를 설명하는 시간
이런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힐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마음보다 내가 왜 화가 나는지, 무엇이 불안한지, 어떤 삶을 그리워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머릿속에서는 구분되지 않던 것들이 문장으로 옮겨놓으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일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두바이 생활이 싫은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나를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했다.
내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남편이나 아이에게 엉뚱한 방식으로 감정을 쏟는 일도 줄어들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내 일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글쓰기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주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원하는지 내 말로 설명할 수 있게 해줬다.
그래서 지금 나처럼 두바이 주재원 아내로 살아가며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곧 괜찮아질 거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 괜찮아질지는 나도 모른다. 가족을 따라 낯선 나라에 왔다고 해서 마음까지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고, 아이가 잘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엄마의 상실감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결정으로 잃은 것 때문에 아플 수 있다.
그 마음을 가족에 대한 불평으로만 여기거나, 감사할 일을 떠올리며 작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익숙한 자리를 떠나 느끼는 혼란일 수 있으니까. 가족을 위한다는 말 안에서 내가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돌아보는 것도, 지금의 생활에 적응하는 것만큼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 다시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내가 해온 일을 돌아보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는 중이다. 예전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음이 무엇이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내게는 18년 동안 일한 시간과 아이를 낳고도 일을 이어간 경험, 낯선 나라에서 가족의 생활을 다시 세워본 시간이 있다. 이력서에서는 공백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두바이 주재원 아내’라는 말이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해줄 수는 있어도, 그 말 하나로 나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18년을 모두 가지고, 다음의 나를 설명할 문장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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